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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족스토리

아버님이 지어주신 정조대왕& 혜경궁 스페셜..내 고향의 변한 모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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꿈이 있다. 꼭 이루고 싶은 꿈이 하나 있다. 바로 내 아버지께 참 인정을 받고 싶다. 단언컨대 나의 아버지는 그 어느 누구보다 더 세상을 바르고 건강하게 살아오셨다. 세살때 천자문을 다 떼고 성인과도 수준 이상의 대화가 가능할 정도 였던 신동 이셨다. 그렇게 총명했던 아버지는 처절한 가난에 허덕이는 집안 사정과 몸이 불편한 할아버님을 대신하여 맏이로서 학업과 동시에 저녁엔시장에 나가 할머니와 팥죽 등을 팔며 6형제 집안의 실질 적인 가장 노릇을 청소년기 부터 하였으며 이 때문에 농학자의 꿈을 접고 공무원의 길인 교대를 진학하여야 했다. 첫 부임을 임곡초등학교에서 하셨고 나도 거기서 유아기를 지냈다. 학창시절 선생님인 우리 아버지를 감히 평가하자면 제자들에게 호랑이 선생님이자 다정한 이모부 모습을 같이 가지고 계셨다. 과학교과 주임,수학교과 주임,한문 선생님 등 여러 교과의 주임을 맡았었고 학교의 정원을 꾸민다던지 행사를 기획한다던지 다른 선생님의 업무를 대신한다던지 하여 일이 늘 끊이지 않았다. 정말 내가 보아도 만능 재주꾼이셨다. 미술,음악,서예,체육 방면에서도 지도력과 전문가 수준의 실력을 가지고 있었으며 사물을 관찰하는 눈매가 남 달라 남들이 잘 캐치 못하는 부분도 많이 잡아내고하셨다. 그와 달리 난 공부가 싫었고 말도 못하는 개구장이 였다. 놀다가 다치는 것은 다반사, 수업에 집중을 못해 담임 선생님들께 "너 정말 하선생 아들 맞냐?" 라는 말을 수없이 들었다. 당연히 아버님의 꾸중은 하루 수십번, 맞기도 많이 맞았으나 나아지기는 커녕 마음속에 아버지에 대한 원망만 가득하였다. 야단치고 맞는데는 서로가 이골이난 상태.그 때에는 사소한 잘못이나 실수에도 눈치나 분위기를 꽤 살펴야 했다.. 지금은 절대 아니고 최고로 사랑하는 분이지만 청소년기까지 같이 한방에 있으면 숨쉬기도 힘들정도로 괴로운 상대였다. 최근에 아버님이랑 술한잔 하면서 옛날 얘기하면서 그때 왜 그렇게 잡았냐고 하니 당신은 모르시더군.. 그랬었냐고 하시더군.. 시간이 흘렀다. 그리고 가수 신해철이가 젊은 나이에 어제 죽었다. 현재 나의 일에서 성공하여 아버지께 진심으로 인정 받고 싶다. 그 꿈을 위해선 나를 끊임없이 다듬고 쉴새없이 열정을 내품어야한다. 2015! 이천 십오년도엔 또 나에게 어떠한 일들이 일어 날까? 곧 출시를 앞둔 정조대왕 스페셜 음식 컷을 물끄러미 바라보고 있자니 문득 ...꾸물 꾸물 아버지가 보고 싶다.. 꿈을 그대에게.